마비 paralysis
a.낮은 아름답고, 밤은 숭고하다.
b.시간이 오기를 기다릴 순 없을까, 마치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듯. 우리가 찍은 사진은 마치 헤어진 연인에 대한 증언 즉, 시간의 뒷면이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박제된 기억의 궤도를 공전하는 것은 늘 내 쪽이었다. 향수/nostalgia는 공간이 아닌 시간의 개념이다. 거기에 가고 싶다가 아니라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음식물 쓰레기 담기 위해 싱크대 안 깊숙한 헌비닐 집합소 속으로 손을 넣었을 때 손 끝에 특정 촉감의 비닐이 닿았을 때가 있었다. 도쿄에서 산 물건을 담아왔던, 차마 일본에서 버리지 못하고 굳이 가져온, 로손 편의점 비닐 봉투였다. 한국 편의점 비닐과 일본 편의점 비닐은 재질 촉감부터 다르다. 생경한 촉감이 손끝에서 시작되면 ‘그때’는 지금, 당장이 된다. 갈증나는 기억은 물질에서 물질로 전달되어 향수에 도착한다. 사진은 몸을 동반하는 감각이니 몸을 통해 깨닫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역시나 추상으로 가는 길은 구체적이다.
c.찔린느낌증 / acanthesthesia : 단순한 촉감에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을 피부에서 느끼는 것. 마비(paresthesia)의 일종이다.
d.스코틀랜드는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각각의 모든 지역은 그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처럼 스코틀랜드 풍경의 광대함과 자연의 웅대함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재구성 했다. 여행 기간 내내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들과 미세한 자연의 섭리에 싸여 행복하고 신비로웠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숭고란 거대한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2019년 12월 말 글렌코, 스코틀랜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병풍처럼 둘러진 산들의 절단면들이 둘러싸여 있는 길을 걸었다. 사방에서 들이미는 축축하고 강한 바람이 패딩을 괴롭히듯 찌그러뜨린다. 깊은 밤 깊숙한 자연, 달빛에만 의존한 채 걸었던 길 위에선 깊은 두려움과 떨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두렵고 떨린 마음도 익숙해지자 밤풍경이 아주아주 파랗다는 것, 산맥 곳곳 드리운 달그림자가 공포스럽고 신비로워 보였다. 낮은 밝고 밤은 숭고하다. 이후 파랗게 보이면 꼭 영웅적인 서사 아니더라도 조용하고 평범한 시간들을 찍게 되었다.
a. Day is beautiful, Night is noble
b. Can’t we wait for time to come, as we wait for the train at the platform. The photographs we take are similar to a testimony of our past lover- it’s the other side of time. Our past lover no longer speaks. I am alone in my memory of the past as I orbit around it. Nostalgia is a matter of time, not space. It’s not about wanting to go ‘there’, but to be ‘then’.
One day I reached down the pile of old plastic bags to pour in leftovers, and felt at the tip of my hand a certain special touch of plastic. It was the plastic that I brought back from Japan, which once contained things I bought at the Lawson convenience store in Tokyo. Plastic bags in Japan are different in texture from the ones in Korea. The moment I touch the foreign texture, ‘that moment’ becomes the present. My desire to remember is delivered from object to object and reaches nostalgia. Photography is a sensation that is accompanied by the physical body, so it cannot be understood unless achieved through physical experience. How specific the road to abstraction is!
c. acanthesthesia : The tingling, numbing sensation of being pierced by needles. A form of paresthesia.
d. Scotland has been a source of inspiration for artists for centuries, and each of the regions within Scotland has their own unique traits. Like a 19th century romanticist, I observe the vast nature of Scotland and restructure it through my camera lens. I was mesmerized by the overpowering beauty of nature and the detailed law of nature. The 18th century British philosopher Edmund Burke defined ‘sublime’ as ‘a mixture of fear and excitement, terror and awe. It's that spine-tingling feeling you get when you stand at the edge of a cliff.’
Towards the end of December of 2019 near midnight. No single tree was to be seen as I walked through the deserted mountain. Cold wind was attacking me from everywhere, poking me through my padded coat. Deep in the night and deep in nature, I relied on the moonlight to lead my path- I was nervous and afraid. Once I became used to the feeling and state of being afraid, I realized how very blue the night was. Shadows of the moonlight covered parts of the mountain and it was terrifying yet mystical. The day is bright and night is noble. After this incident, I found myself documenting blue sceneries, even if they were quiet and mundane.